내가 기억하는 소설의 첫 문장들

 어느 날, 공중 집회소의 홀에서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나는 이미 노인이었다.   - 마르그리트 뒤라스,『연인』(김인환 옮김)

 수녀들은 욕정처럼 소리 없이 지나가고, 술 취한 남자들과 술 취하지 않은 눈들이 그리크 호텔의 로비에서 노래를 부른다. 
- 토니 모리슨,『가장 푸른 눈』 (신진범 옮김)

by 아니마 | 2010/12/31 23:59 | 이삭줍기 on/offline | 트랙백(1) | 덧글(2)

삶과 꿈, 그리고 행복


  대중문화가 등장하기 이전의 민중들도 꿈을 꾸었었다. 사람들은 교육을 받고, 구애를 하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면서 부, 명성, 또는 힘이라는 꿈들에 참여를 했다. 대중문화가 등장한 이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직접 행동으로 자신이 그린 청사진을 실행하지 않더라도 쉴새없이 쏟아지는 문화컨텐츠들로 가만히 앉아서 머릿속으로만 꿈의 지도를 그렸다가 지울 수 있게 되었다는 정도다. 사람들은 언제나 어느 정도 미몽의 베일로 눈이 가려진 채 삶을 바라봤다. 대중문화가 상식처럼 주입시켜 놓은 상투적인 행복의 이미지들에서 무서운 것은 그 '대중적' 파급력이라기보단 오히려 '행복'이란 관념 그 자체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행복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에밀 아자르가 자신의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행복이란 놈은 그 실체도 불분명하고 성질이 아주 고약하다. 한 번 행복을 자기 편으로 만들겠노라고 결심한 사람에겐 행복이 아닌 삶의 모든 구성요소가 불행으로 다가온다.

by 아니마 | 2009/11/30 00:41 | 囚人日記 | 트랙백(1) | 덧글(1)

2009년 11월 7일, 일기.


 개별적인 삶들을 관통하는 불변하면서도 희망적인 규칙성 같은 것은 엄밀히 말해 존재하지 않는다. 태어날 부터 가진 것도 많은데 살아 가면서 점점 자기 자산(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을 늘려 가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세상에서 '좋다'고 말하는 것들을 소유하기엔 이미 심하게 불리한 조건으로 태어나 살면서 점점 소모되어가기만 하는 비참한 개인도 있다. 잃은 만큼 얻는 것이 있을 거라거나, '언젠가는 잘 될 것'이라고 흔히 하는 말들은 자신이 바라는 바에 마법을 걸기 위한 주문에 지나지 않는다.

by 아니마 | 2009/11/07 22:39 | 囚人日記 | 트랙백 | 덧글(0)

상처와 사랑의 흔적과 추억과 술 - 2009년 10월 19일 오전, 꿈.

 나는 '루디'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서 보도(步道)가 아닌, 보도 옆의 화단 속을 헤매고 있었다. 화단에 심어진 키작은 나무들이 정글과 같이 압박해오는 것을 헤치고 나오니 어린 시절 결코 가본 일 없는, 우리 집 앞에 있던 교회 첨탑의 '뒤통수'가 멀찍이 보이는 언덕 위였다(꿈에선 이런 장소들조차 친근하다). 자세히 보니 내가 아는 '남산교회'의 첨탑 앞으로(실제 그 교회보다 훨씬 뾰족했지만 꿈에선 똑같아 보인다) 새로운 첨탑 하나가 서 있었는데 꼭대기에 가운데가 뚫린 둥근 도넛 모양의 기념물이 서 있었다. '새로운 종교가 동네에 들어왔나' 싶어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가는데, 내 바로 앞에 남산교회 건물처럼 하얀(지금 그 교회 외관은 하얗지 않다) 건물의 옥외계단과 저수 시설 혹은 안 쓰는 수영장 비슷한 것이 가로막혀 있었다. 계단 위로 회백색의 진흙이 두껍게 덮여 있었는데 돌멩이를 하나 던져 보니 아주 고운 거품이 일고 그 밑에 맥주 같은 색깔의 액체가 있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외국 브랜드의 맥주가 이 곳에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그 안에 손을 담가서 입가로 튀어오른 맥주의 맛을 보니 쌉싸름하고 구수한 맛이었는데, 꿈 속에선 뭔가 변질된 맛이라 느껴져 나는 멀찍이 몸을 일으켰다. 곧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코트까지 옷을 갖춰입은 채로 그 '맥주 계단' 위로 뛰어들었다. 수영장처럼 우묵한 데도 없는데 계단 위로 몸을 던진 그가 다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계단 쪽을 다시 내려다 보니, 계단이 끝나는 맨 아래쪽에 동네 목욕탕 온탕만한 크기의 풀이 갖춰져 있었다. 노신사는 맥주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꿈 속 답게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것은 일본에서 들어온 풍습이지'라고 생각을 하니 (역시) 바로 직전 꾼 꿈에서 내가 일본에 있다가 다쳐 온 왼손이 욱신욱신 아파 왔다. 내 왼손엔 모래알만한 자잘한 유리 파편이 박혀 미세하게 찢어진 상처들이 있었다. 상처는 오늘같이 흐린 날 일본 도시의 한 창고형 마트에서 과자들을 뒤적거리고, 계산하지 않은 채로(물건을 들고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바로 바깥 도로로 나오다가 엄청난 크기의 헬기가 뜬금 그 도로에 착륙하는 바람에 파편들에 노출되어 생긴 것이다. 나는 헬기가 만드는 강풍을 피하려고 아무 버스나 잡아탔는데 그 이후가 기억나지 않고 바로 이 꿈으로 이어졌다(현실에선 로마에 사는 한 소년을 서래마을에서 찾는). 나는 노인의 편안한 모습을 보며 내 아픈 손을 맥주에 담그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잠을 깨었다. 

by 아니마 | 2009/10/19 10:33 | 이삭줍기 on/offline | 트랙백 | 덧글(0)

2009년 10월 14일 새벽, 꿈.


 "사랑이란 너의 밖으로부터 찾아오는 것도, 네 안에서 울려나오는 것도 아닌 어떤 목소리에 복종하는 것이다."

by 아니마 | 2009/10/14 11:36 | 이삭줍기 on/offline | 트랙백 | 덧글(0)

신과 인간에 대한 짧은 성찰

 걸출한 학문적 업적을 쌓고 수많은 제자들을 훌륭한 목사로 양성한 유명한 신학자 한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 그에게 왜 당신은 목사가 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각기 다른 기대를 품고 교회를 찾은 사람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그들의 기대를 배반할 지도 모르는 진실을 드러낼 설교를 할 자신이 없다.

 이 신학자가 타계를 얼마 앞두지 않고 자기 제자 중 한 명과 인연있는 교회의 행사에서 연단에 섰다. 그는 목사가 된 자기 제자에게 한 말씀을 주었다. 살아 있는 예수의 얼굴에 온갖 분칠을 하고 화장을 해서 왜곡시켜 온 게 지금까지 교회의 역사고 신학의 역사였다. 당신은 예수의 얼굴을 그려라. 다만 당신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예수를 그려라. 그러면 당신이 그린 그 예수가 가장 먼저 당신의 영광을 없애고, 당신을 부끄럽게 하고, 권위 있는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토막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계속 그렇게 예수의 얼굴을 그려라.   - 9월 23일 들꽃향린교회 성서학당에서 들은 두 가지 이야기

by 아니마 | 2009/09/24 22:06 | 이삭줍기 on/offlin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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