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9일
나는 '루디'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서 보도(步道)가 아닌, 보도 옆의 화단 속을 헤매고 있었다. 화단에 심어진 키작은 나무들이 정글과 같이 압박해오는 것을 헤치고 나오니 어린 시절 결코 가본 일 없는, 우리 집 앞에 있던 교회 첨탑의 '뒤통수'가 멀찍이 보이는 언덕 위였다(꿈에선 이런 장소들조차 친근하다). 자세히 보니 내가 아는 '남산교회'의 첨탑 앞으로(실제 그 교회보다 훨씬 뾰족했지만 꿈에선 똑같아 보인다) 새로운 첨탑 하나가 서 있었는데 꼭대기에 가운데가 뚫린 둥근 도넛 모양의 기념물이 서 있었다. '새로운 종교가 동네에 들어왔나' 싶어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가는데, 내 바로 앞에 남산교회 건물처럼 하얀(지금 그 교회 외관은 하얗지 않다) 건물의 옥외계단과 저수 시설 혹은 안 쓰는 수영장 비슷한 것이 가로막혀 있었다. 계단 위로 회백색의 진흙이 두껍게 덮여 있었는데 돌멩이를 하나 던져 보니 아주 고운 거품이 일고 그 밑에 맥주 같은 색깔의 액체가 있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외국 브랜드의 맥주가 이 곳에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그 안에 손을 담가서 입가로 튀어오른 맥주의 맛을 보니 쌉싸름하고 구수한 맛이었는데, 꿈 속에선 뭔가 변질된 맛이라 느껴져 나는 멀찍이 몸을 일으켰다. 곧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코트까지 옷을 갖춰입은 채로 그 '맥주 계단' 위로 뛰어들었다. 수영장처럼 우묵한 데도 없는데 계단 위로 몸을 던진 그가 다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계단 쪽을 다시 내려다 보니, 계단이 끝나는 맨 아래쪽에 동네 목욕탕 온탕만한 크기의 풀이 갖춰져 있었다. 노신사는 맥주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꿈 속 답게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것은 일본에서 들어온 풍습이지'라고 생각을 하니 (역시) 바로 직전 꾼 꿈에서 내가 일본에 있다가 다쳐 온 왼손이 욱신욱신 아파 왔다. 내 왼손엔 모래알만한 자잘한 유리 파편이 박혀 미세하게 찢어진 상처들이 있었다. 상처는 오늘같이 흐린 날 일본 도시의 한 창고형 마트에서 과자들을 뒤적거리고, 계산하지 않은 채로(물건을 들고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바로 바깥 도로로 나오다가 엄청난 크기의 헬기가 뜬금 그 도로에 착륙하는 바람에 파편들에 노출되어 생긴 것이다. 나는 헬기가 만드는 강풍을 피하려고 아무 버스나 잡아탔는데 그 이후가 기억나지 않고 바로 이 꿈으로 이어졌다(현실에선 로마에 사는 한 소년을 서래마을에서 찾는). 나는 노인의 편안한 모습을 보며 내 아픈 손을 맥주에 담그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잠을 깨었다.
# by 아니마 | 2009/10/19 10:33 | 이삭줍기 on/offline | 트랙백 | 덧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