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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Cinemaniaco.
나처럼 못나서인지 공감 철철에 마지막엔 동정심까지 품게 만든 페드로 산도발이 주인공 뒤에 나와서 좋다.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감상법이기도 하거니와, 요 몇달간 영화 보러 극장을 열심히 찾아다니질 않았더니 영화관에 갈 때마다 처음 보는 영화에 부당한 기대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괜찮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
뭐야 그냥 보다 보면 전체 줄거리 다 이해되는 영화였어?'하고 싱거워하는 나 자신에 놀랐다. -_- (요새 시점이나 관점 꼬아서 만든 영화들이 워낙 많아서 그랬나...)
유럽의 유명한 영화제들에서 큰 상 좀 탔다는, 회화적인 구도와 시적인 분위기의 포스터만 봐도 거장의 난해한 손길이 역력한 아주 내면적인 영화들(흡사 감독이 스스로를 치유하러 만든 듯한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그 답답하고 비상식적인 전개에 당황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영화가 매우 고플 때 꼭 그런 영화들이 땡기고 그들이 미묘하게 건네는 공감의 손길을 기대하게 되는 건 무슨 이율까? 교양 좀 있다는 사람들이 뭔 소린지 모르겠단 말을 수없이 되뇌면서도 철학서를 집어드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까?
기억이나 회상, 과거가 현재의 인간에게 '청구서'를 들이미는 방식에 흥미를 갖는 나로선(현실에서든 영화 보면서든...) 이레네가 소설을 쓰기 위해 25년 전의 사건을 더듬는 에스포지토에게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한 대사가 새롭게 다가왔다. 이 영화의 에스포지토와 모랄레스처럼 평생을 과거와 기억의 노예로 살아가는 인간(인간뿐인가, 심지어 국가들도 그렇다)들이 허다한데, 자기처럼 앞만 보고 사는 사람들에겐 뒤를 돌아보는 일조차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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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uz.it
솔레다드 비야밀Soledad Villamil이 분한 이레네 헤이스팅스. 스페인어로 '솔레다드'는 '고독'이란 뜻이다.
알모도바르의 '귀향(Volver)'에 나오는 이발사 둘째 딸의 배역 이름도 솔레다드였다. 왜 아이에게 고독이란 이름을 붙일까?;;
며칠 전 공원에서 운동을 하다가 '남들 평판에 신경 많이 쓰고, 남들 다 사는 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폐쇄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관이 뚜렷하고 '내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자기 틀 안에서 이 세계와 무수한 인간들의 개성을 담아내는 데 '그 나름대로' 성공했기에 그러는지도 모르지만, 줏대 없는 사람들은 남의 의견 또는 방식을 추종함으로써 어떻게 보면 그 의견을 낸 남들을 자기 세계에서 몰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모양을 한 퍼즐조각들이 서로 맞지 않는 것처럼, '남들같은 나'안에 어떻게 남을 수용할 여유가 있겠는가? 이 뜬금없는 가설에 비추어서 따져 보면 지나치리만큼 상식적이어서 "과거를 돌아볼 능력이 없는" 이레네는 과거에 대해 닫혀 있는 불완전한 인간인 셈이다. 딱한 점은 우리들 대부분이 그런 이레네와 같거나 이레네를 동경하고 있다는 거겠지. 물론 이 영화 속 이레네도 완전히 '반듯'한 인간은 아니라, 자기만의 극복하지 못한 과거에 회한도 갖고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 역시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래도 감독은 연약한 대중들을 최대한 배려해서 긍정적인 메시지만 남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충격과 공포의 엔딩을 선사할(여기에 쓰면 스포다) 주인공의 관찰대상자 모랄레스는 과거에 대해 (나쁜 것은 지우고) "좋은 것만 남기시라"고 충고한다. 그래, 좋은 것만 남겨야지. 친절, 미소, 얼굴에서 나오던 밝은 빛, 천진함, 풍경의 고요한 아름다움 같은 것들을...
마지막으로, 제목에 찌푸린 얼굴(-_-)이 추가된 이유.
왜 요즘 개봉하는 외화들의 한국어 제목은 하나같이 어딘가 어설픈가?
원제가 'El Secreto de sus Ojos' - 대학 첫학기에 맛만 본 스페인어 실력이지만 '그의 눈들의 비밀'이란 뜻 같은데, 이걸 '비밀의 눈동자'라고 어순을 바꾼 건 한국어로 더 감이 오는 제목을 찾고자 하는 노력으로 봐줄 수 있다. 근데 그 앞에 굳이 '엘 시크레토'를 붙인 이유는 간지나는 제 2외국어의 도움 없이 그럴듯한 제목을 못 뽑겠다는 뜻 아닌가? 그나마도 왜 '세크레토'가 아니고 '시크레토'라고 영어 흉내를 내는가?(스페인어의 e발음에 우리말 '이'에 해당하는 음가가 없음이 분명한데도...)
'Backdraft'를 '분노의 역류'로 바꿔 줄 정도의 고심한 흔적이 나는 제목을 요새 한국 극장 포스터에서 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머니 네버 슬립스' 정도가 아니면 다행이라 해야 할 판이다). 하긴, 그 옛날에도 괜찮은 제목 뽑기 위해 외화 수입업자들이 헐리웃 영화들의 일본 개봉명을 흘끔거렸다는데 여러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자신의 창의력의 70%가량은 일본에게 빚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진짜 마지막, 이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했을 수도 있습니다 -ㅂ-